2014.12.13 눈 눈이란 과거를 덮는 현재의 이불지나온 날들과 더불어 나는 눈에 묻히네어설퍼서 더 서러운 첫사랑의 노래 들으며봄날엔 눈부시게 찬란했더라는 전설의 마른나무 아래로 나는 갈라네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2.6 시상으나 시상으나 시인 참 많기도 하다 찬 하늘에서 이렇게 많은 시 쏟아져오는 걸 보면 시상은 온통 시투성이, 살아있는 모든 게 시인 아닌가 시인은 시를 낳되 이 아름다운 시상에 시는 없고 묶인 발처럼 남아있는 시집, 시집들만 즐비하구나 낡고 허물어져도 끝끝내 쥐고 있는 시집과 책방 꽂..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1.28 떠남 바람이 차갑게 불어 와 눈이라도 내릴 듯 이슬 머금은 바람 속으로 친구가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이 바람 따라 내가 먼저 떠나려 했건만 너 먼저 떠나는구나 떠날 때를 놓친 나는 바람 속에서 떨고 너는 따뜻한 나라를 향해 그래 가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어라 그 먼 나라에도 겨울..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26 밤 검은 호수에 떠도네 마른 잎은 떨어져 아직 물위에 있고 천국은 아직 공중에 있네 갈곳 멀어 가라앉을 수 없네 젖은 낙엽은 갈곳도 없이 바람에 밀려가네 물들수록 차갑게 식어가는 육신에 이슬 내리네 눈 깊을수록 밤이 더욱 무겁네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23 그 작가의 책 너는 물었다 왜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느냐고나는 말했다 그의 문장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돈이 없어서 책을 사지 않는단 말은 할 수 없었다돈 있으면 맛있는 짜장면부터 사먹고 싶단 말도 하지 않았다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23 시린 날 가을날 오후 볕은 유달리 눈이 시다 높은 하늘이 시란 건지 푸른 바람이 시란 건지 언제 올지 모를 그대 전화 목소리 기다리는 마음이 내내 시라서인 건지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16 말재주 말재주는 진심을 이기지 못하고글재주는 진실을 넘어서지 못하며진리를 넘어서는 손재주도 없나니재주 부리는 자 뙤국놈 손바닥에 놀아나는 곰일밖에!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15 가을 밤. 산모퉁이 돌아서다 눈에 들어온 속이 꽉 차 통통한 알밤 하나 가시돋은 송이 헤치고 손에 넣었다 딱딱한 겉껍질 떫은 속껍질 이빨로 벗기자 우두둑 빈 속을 채운다 입안 가득 고여온다 잘 익은 가을 사랑도 이렇게 주워먹으면 입맛이 날까 남몰래 주워먹은 생율 한 톨이 사랑처럼 드리워.. 길 위의 시인 2015.10.11
2014.10.13 골목길 원더우먼도 아닌 그 여자가 붉은 노을 숨어버린 어둑한 골목을 느릿느릿 지나와 청페인트 닳아빠진 낡은 대문에 파김치 같은 열쇠를 삐걱삐걱 꽂아넣을 때 수퍼맨이 아닌 그 남자는 오지도 않은 내일을 슬퍼하며 엉거주춤 일어나 막걸리 묻은 검정봉지에 식은 대하 다섯마리 주섬주섬 챙.. 길 위의 시인 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