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2014.1.20

행인(杏仁) 2014. 2. 25. 00:43

먼저, 손가락이 무디어집니다

아귀 힘이 약해지는 것인지
손끝의 신경이 말라가는 것인지
자판 건드리는 동작이 갈수록 형편 없습니다

다음, 귀가 말을 잘 안듣습니다
더러운 말을 담기 싫어서인지 
귓밥으로 배를 채워서인지
입모양을 눈치로 때려잡지 않으면 소리가 어둡습니다

이어, 눈이 잘 떠지지 않습니다
꼴사나운 모양 보기 싫어서인지
생시보다 꿈속이 아름다워서인지
앞을 보기란 잠들기보다 어려워서 만날 졸고 있습니다

사용한 해가 길수록 먼저 노화되고 사용횟수가 많은 순서대로 점차 늙어가는가 싶습니다 
힘이라는 게 유한해서 힘을 많이 쓴 기관들이 먼저 낡아가는가도 싶습니다
다 쓰지도 않았는데 물건이 낡아서 힘 못쓰니 억울하기도 합니다

턱심은 줄고 입술이 마릅니다 목구멍은 좁아졌는데 이 굴뚝에 연기만 가득하니 숨쉬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이빨이 고물 되니 씹어먹기도 폭폭하고 오장과 육부가 저마다 심술이니 심통이 납니다

노하우만 늘면 뭐에 쓸까요
노화가 함께 느는데
노화 올수록 노하우만 느니 이래서 인생은 그 자신에게도 공평한 걸까요
대뇌소뇌우뇌좌뇌는 쪼그라들고 심장은 가문 논바닥처럼 갈라졌으니 삭풍을 견뎌낼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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