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1, 2, 3
스트레스 1 - "출근길"
창밖이 얄밉게도 벌써 훤한데,
라디오 시계 떠든지도 한 시간이 넘었나본데
찌뿌둥한 이 몸둥아린 왜 이제 일어났을까
어젯밤 잠 못 이루고 속앓이 한 탓일까
목욕탕으로 달려가며 치솔 입에 물고
변기 위에 엉덩이 걸치고
머리에 물만 잔뜩 묻혀 드라이로 모양 만들고
주섬주섬 챙겨 입는 양복에다 양말, 손수건
리모콘 달길 다행이다 원격시동이라 다행이다
녹즙 한잔 마시는 사이 똥차는 덜덜덜 열을 올리고
엉거주춤 뛰어 나온 골목엔 덜렁 너 하나 뿐이니
넣다 뺐다 할 거 없이 단번에 출발하자,
앞서 가는 티코는 초보운전, 옆 차선 트레일러엔 티코 스무대
신호는 왜 자꾸 막히나 조금만 밟아 주면 신호 하나 넘을텐데
오늘도 어김없이 머피가 나타났다 30분 거리 참 지루하다
라디오를 켤까 아냐 음악이나 듣지 담배 하나 피워 문다
또 지각이구나 난 왜 이러지 계속 찍히누만
사무실 들어갈 땐 어떤 표정 지을까 그래 그냥 덤덤한 척
8, 늦은 건 늦은 거지 핑계 댄다고 안 찍힐까 차라리 뻔뻔하자
앗, 부장이 안보이네 다행이다 그 인간 어제 밤 접대 나갔구만
스트레스 2 - "적들의 표정"
건너편 책상에 마주 앉은 넌 왜 그리 무덤덤하냐
어차피 너나 나나 물먹긴 마찬가진데
넌 뭐 그리 잘난 놈이게 넌 뭐 그리 강심장이게
여유 있는 척, 의연한 척 하냐
뒤에서 시끄러운 너 왜 그리 건방지냐
4가지 없는 허릅승이 언제 그렇게 컸냐
뒷구녁으로 돈가방 달고 들어 와서 이리저리
물 좋은 자리만 다니더니, 인제 큰소리 칠 때 됐냐
어이 혼자 잘 나가는 너 이제야 마감하러 들어오냐
부장 없으면 왕창 개기고 부장 있으면 무게 잡는 돼지
같은 너 어제 부장하고 술 몽땅 고추장에 쳐 먹었지
그런 자가 감원 대상이라고 스포츠 신문에 났던데 사장은 뭐 하는지 몰라
스트레스 3 - "겨울비"
겨울비 내리고 님은 간다
무반주 첼로 들으며 분위기 잡고
추적추적 빗소리에 괜시리 울적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감원에 월급 동결".
겨울비 내리고 꿈은 하늘로 떠난다
혼자서 아껴 듣는 아다지오 G단조 한숨만 쉬고
한 달이 지난 상여금은 다음 달로 넘어가고
목구멍에 소주 붓는 삼겹살집 전축에선 조용필이 청승이다
겨울비 젖어들수록 심장은 말라만 간다
입술은 바싹 타는데 아이들은 왜 아빠만 찾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 마이너스통장 하나 한뎃잠 잔다
오늘은 이 겨울비 그만 좀 와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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