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기다림

행인(杏仁) 2005. 5. 21. 12:09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스스로 미움을 삭여내며 나를 숨기려 할 찰나
단 한 차례도 외로움을 이길 수 없었다
전화를 기다리고, 말 건네주길 기다리며, 지친 가슴으로라도
누군가가 다가서길 갈망했었다

사람을 밀어내기도 했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반복하며
거울로부터 못생긴 내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
엄마의 자궁과 내 오줌 묻은 요대기
내 죽어 사라질 어느 강물까지가 내 방에 가득 찼었다

사람 속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대여섯 명이 함께 앉아 가볍게 말 던지고
자글자글 웃음이 돌아 다녀도, 거기 내 웃음은 없었다
시선 가는 길 없어 방황하고, 내 안으로 숨죽이며
먼 북소리처럼, 둥둥 그렇게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

벌판 길게 작은 사람이 지나갔다
석양인지 이른 아침인지 때를 알 수 없는 내 느낌 속에
멀리 사람 냄새는 가늘었다
가물거리는 의식 너머에 사람이 스쳐 가고
무어라 꼭 붙들 수 없는 그 존재는 벌판 끝 마을의 희미한 불빛이었다    1997.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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