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봄 떠난 자리에서

행인(杏仁) 2011. 6. 24. 02:04

하얀 옷 차려 입고 

목련 아래서 

너 를 기다린다 

그림 같은 봄

 

인적도 끊겨버린 동네 

고샅에 숨어

아른거리는 너의 

꽃같은 그림자


그림자 밟는 일이 

이리 아픈걸 

아지랑이 사라진 뒤에야

문득 알았다 

 

손목도 주지 않고 

사라져 갔다 

이름이나 기억할까

웬수같은 봄 


어깨 너머 말 화살 

하나 날리고

입술만 달싹이다 

멀어져 갔다


 

2011. 6.24 김행인

그저 그렇게 길을 가다가 마주쳐 보아야 '오랫만이네, 손 한 번 쥐어보고, 언제 밥 한번 먹세 인사치레 한 마디로 지나치고 마는, 이름을 잊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마주치면 얼굴 붉어지고 입술 달싹이며 속엣말이 맴도는, 너의 목청 속에서 끝내 잊혀지지 않는 목엣 가시로 남고 싶다.

-봄이 떠나간 뒤로 얼마가 흘러서야 나는 겨우 이렇게 웅얼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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