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게 보이는 고상한 괴테가 자신의 내부에는 단테처럼 예언자적인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칼라일이 R.W. 에머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괴테에 대하여 언급한 대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괴테의 이미지를 평온한 낙천주의자에서 고통에 찬 회의주의자로 바꾸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괴테를 정당하게 평가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괴테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인"이라고 한 T.S. 엘리엇의 결론도 그리 적절하지 않게 보인다.
괴테를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언어구사에 통달했기에 산문에서조차도 범인(凡人)이 쉽게 통찰할 수 없는 이념을 표현하여 그의 글을 번역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의 베르테르조차도 삶의 현실은 양자택일로는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회의주의자라고 본다 하더라도 낙관적인 회의주의자였다.
한없이 깊은 심연을 응시하면서도 생명과 빛을 의식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최대한의 삶을 살면서도 교양있는 미덕을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무의식적인 정신의 풍부함을 만끽하면서도 그 자발성을 파괴하지 않고 거기에 성찰의 빛을 부여하였다. 계몽주의의 아들답게 과학의 모험에 투신하면서도, 우주의 신비 앞에서는 언제나 경외심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괴테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사고체계를 형식화하지 않았다.
칸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였으나, 형이상학의 과도함과 논리학적 장광설의 무익함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는 획일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다.
괴테는 진실은 타협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을 포용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대화 Gespräche〉와 더불어 그의 지혜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구 Maximen〉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에는 항상 반대되는 것을 보완할 수 있는 '짝'이 들어 있다.
그것들은 속담의 평범성과도 비슷한 무엇을 지니고 있으나, 그의 생각이 실제로 살면서 느낀 것이라는 점에서 그 평범성이란 앙드레 지드의 말대로 '비범한 평범성'이다.
실제 괴테의 삶에는, 그의 모든 특별한 재능들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평범성이 들어 있었다.
그 자신이 그 점을 '상징적'이라고 느끼고 일련의 자서전적 저서들을 통해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만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보다도 범인(凡人)이며 따라서 자신에게서 범인들이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괴테는 금욕주의자도 신비주의자도 아니고, 성인이나 은자도 아니며, 돈 후안과 같은 호색한도 아니고 시인 중의 시인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절제된 감성적 인간'의 지고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분투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나폴레옹이 에르푸르트에서 그를 만난 뒤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며 느낀 감정일 것이다.
'마을미디어 교실 > 괴테를 배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테의 마지막 10년 (0) | 2006.10.16 |
---|---|
괴테, 낭만파와의 관계 (0) | 2006.10.16 |
괴테, 실러와 만나다! (0) | 2006.09.01 |
괴테의 성숙기-바이마르 시절 (0) | 2006.08.30 |
괴테, 질풍노도의 시기 (0) | 2006.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