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배설 -남월 김수돈

행인(杏仁) 2005. 5. 21. 13:55

결혼한 지 십 년 반 만에 처음
이혼하잔 말 불쑥 꺼냈을 때
아내는 무표정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말을 꺼낸 나 또한
아무 말 하지 않은 듯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바람난 것도 아니고
부부 사이 성격 차이도 아니고
고부 갈등이나 가정불화는
더더욱 아닌데
못난 남편 때문에 빚 갚을 일 걱정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해서라니

함께 출근하는 차 속에서
아낸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인상을 찌푸린다, 머리 아프다고.
아낼 내려 주고 혼자서 가는 길
내내 배가 불편하다
마음에 없는 말 꺼내 놓고 휴지로 닦아 내었다          남월 김수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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