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연체 - 남월 김수돈

행인(杏仁) 2005. 5. 21. 13:53
1999/1/4
 

신용카드 대금이 밀려
며칠째 휴대폰을 켜지 못했다

아내 앞세워 카드론 받아 쓰고
연거푸 두 달 현금 서비스 받아 쓰고
기름 값도 카드로 결제해 놓고선
빈손이 되어 버린 나
호주머니엔 돈 한 푼 없다

마치 제 빚 받으려는 듯
악착같이 독촉해 대는
카드회사 직원들의 목소리가
송곳 되어 내 가슴을 때리고 찌르고
하염없이 무너뜨린다

갑이한테서 빌려 볼까,
좀체 대답 주지 않는 친구 녀석에게
말 꺼냈다가 혼자서 창피해 하고
오백 원 짜리 즉석 복권 화장실에 앉아 긁어 봐도
갑자기 튀어나올 소득은 없다.

이 답답한 신용사회에서
차라리 무책임하게 도망가고 싶은데
달아 날 수도 없다
나는야 도시 속에 갇힌 새   -남월 김수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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