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서재/落書

2014.10.20 스잔나

행인(杏仁) 2015. 10. 11. 18:25

스잔나! 이 노래를 어릴 적엔 '사랑의 스잔나'라고 알고 들었다. 원곡이 영화 '사랑의 스잔나'OST였기 때문이겠다. 라디오로나 유행가를 듣던 시절 정훈희의 목소리와 문주란의 목소리 두 버전이 대비되곤 했다. 내가 이 노래를 뚜렷히 기억하는 건 유독 이 노래를 잘 불렀던 동창 여자애 때문이다.

면 어떻고 창부타령이면 어떠랴? 아이들에게도 그저 인기있는 유행가면 족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애와 함께 반 대표로 나란히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잦았고 그 애가 노래를 부를 때면 거의 그 옆에 서 있었다. 그애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마다 섞여 나오는 숨소리와 목젖의 떨림까지 오롯하게 전해져오곤 했다.
그 시절 어린 내 귀에도 그애의 노랫소리가 참 애절했다. 어쩌면 그렇게 예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를 가졌을까? 검고 깊은 눈동자의 단발머리 소녀는 조숙하기까지 해서 노래부르는 몸짓마다 가슴이 봉긋해졌고 소리를 토해내는 입술마저 스무살 누나들을 닮아 있었다. 또래의 여자애에게 장가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마 그애가 처음이었지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온 이후 두 번쯤 보았을까? 내 나이 스무살 되던 해 이맘때쯤 그만 그 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세한 경위야 알 수 없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불행한 죽음이었다. 그애는 자기네 집 뒷동산에 묻혔다. 그 뒷 동네에 살았던 나는 고향에 갈 적마다 그 애의 무덤 앞을 무심히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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