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에서 ‘글의 기본’은 기본
언론매체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특히 독자가 ‘글’로 읽는 신문은, ‘어문(語文)’ 생활의 길잡이 이기도 하다. 이 점을 생각하면, 신문을 만드는 이들에게 바른 말, 바른 글을 쓰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기지 않을 수 없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의미가 분명한 낱말을 고르는 일이나, 문장 하나하나 비문(非文)이 아닌 제대로 된 문장으로 완성하는 일, 기사 전체의 흐름에까지 일일이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누구나가 이런 점을 주의하지 않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지역의 신문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적합하지 않은 낱말, 문맥이 맞지 않는 기사를 만나는 일이 허다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서둘러 마감시간을 대느라 시간에 쫓겨서 허둥지둥 기사를 작성하다 생긴 일이라 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문기사에서 비문이나 문맥이 맞지 않는 글은 ‘오자’나 ‘탈자’의 문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읽을 수 없는 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기자가 열심히 취재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작성한 기사가, 읽어보려 해도 읽을 수 없는 글이 되었다면 참 서글픈 일이다. 독자도 서글프지만 기자도 서글퍼 할 일이다. 주어와 술어, 목적어 사이 호응관계가 맞지 않는 문장, 동사를 쓸데없이 명사형으로 바꿔 쓰는 버릇, 수동형의 남발..., 굳이 일일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런 식의 문장은 기사문 중에서 흔히 접하는 표현이다. 가벼운 악문의 경우에는 독자로서 읽기가 답답하고, 심한 경우에는 아예 기사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오, 탈자가 난 경우라면, 취재기자도 바빴고 데스크도 바빴고 편집기자도 바빴나 보다 하며 한번쯤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헌데 글이 ‘비문’이 되어 버리는 경우라면, 과연 독자가 이해해 줄까? 문장의 어순이 이상하고, 글의 흐름이 어색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보기 힘든 기사를, 애써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줄까? 아니다. 독자는 그 기사 읽기를 포기한다. 아니 읽기가 힘든 그 신문을 던져 버리고 다시 찾아 읽지도 않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주저리주저리 말로 들려주는 라디오도 있고, 친절하게 멋진 영상까지 보여주는 텔레비전도 있는데 무엇 하려고 그 신문 애써 읽으려 할까?
독자가 읽기조차 힘든 글이 기사로 등장했다면, 그 이유는 먼저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기자가 바른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신문의 기사는 양질의 것이 될 수 없다. 신문 기사에 특히 어색한 문장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기자들이 문장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 크겠다. 기사 작성법을 도제식으로 답습하다보니 선배들의 잘못된 문장까지도 기사문의 전형인 양 익힌 기자도 있다. 허나 데스크가 일일이 고쳐 주기를 바랄 수도 없고, 편집기자더러 교정을 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글의 기본’은 바로 일선 기자 스스로 노력하고 지켜가야 할 일이다. 기사를 쓸 때 ‘글의 기본’을 지키는 것은 기사 내용이나 기사 방향 못지않게 중요하다. 독자가 한 신문에 신뢰를 보내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것도 작은 데에서 비롯될 수 있다.
김수돈_(2010년 4월 30일 전민일보 독자권익위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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