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무엇’을 잃어버린 10년인가? (경향신문 2007년 11월 19일자)
최근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등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싸잡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규정한 것 그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읽히는 바이기 때문이다. 정작 놀라운 건 다수의 국민들이 그 ‘잃어버린 10년’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13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설문조사에서도 이 주장에 대해 ‘동의’ 또는 ‘동의하는 편’이란 응답자가 54.9%,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40.2%로 나타났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지난 10년간 잃었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나라당이 작성한 소위 ‘잃어버린 세월 신고목록’을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양극화 문제가 포함돼 있다. 지난 10년간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져 우리 사회가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양극화됐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되리라는 평소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 지적만큼은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1998년 0.316으로 급격히 높아진 후 2006년에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0.351까지 올라갔다. 97년 도시근로자 상위 10%의 소득은 하위 10%의 7배였으나 98년에는 9배로 급상승했고, 이 격차는 2006년에 이르러 역시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10배로 벌어졌다. 소득 양극화의 주범은 비정규직의 증대였다. 97년 45%를 밑돌던 비정규직의 규모는 2001년 55.7%, 그리고 2005년에는 56.1%로 커졌다. 빈곤층의 확산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상대빈곤율은 통계 첫 해인 99년 15.01%였으나 2006년에는 16.42%로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뿐 아니라 자산의 양극화 역시 심각해졌다. 예컨대 민간 보유 토지의 57%를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말이지 약자가 설 땅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결과를 앞에 놓고 이들에게 희망을 품으라는 건 언어도단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자살률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였으며, 2004년과 2005년은 ‘드디어’ 자살률 1위 국가로 기록됐다.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잃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들, 특히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의 희망 말이다.
진보의 핵심 정신은 약자 배려다. 그런데 진보를 자처하는 두 정권 하에서 오히려 더 많은 약자들이 양산됐고 그들의 희망이 무너졌다니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이래 추진돼온 ‘불균형 압축 성장’ 전략의 뒤편에는 소외된 수많은 약자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대에 부풀어 진보정권의 출범을 환호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두 정권은 연속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다. 희망은 잃을 만했다.
그러나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부디 두 정권에 대한 실망이 우리 사회의 진보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희망 상실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렸다. 실질적 민주주의, 즉 진보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또 다른 수십 년을 노력할 만하지 않겠는가. 10년간 잃어버린 것은 두 정권에 대한 기대로 족하다. 진보에의 희망은 결코 잃어선 아니된다.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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