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서재/落書

투덜선사라 함은...

행인(杏仁) 2006. 9. 29. 21:12

우리 집안에서 나는 투덜이로 정평(!)이 나 있다.

아내가 내게 붙여 놓은, 달갑잖은 별명이다.

집안에 붙어 있을 때 이러쿵 저러쿵 상관해가며 불평한다 해서 이렇게 비판(!!)하곤 하는 것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별명 아닌 별명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투덜이라 할 때마다 대단한 노기를 발동하였지만, 이럴수록 투덜이라 일컫는 아내의 비아냥(!!!)이 더 심해지는 거 같아, 그만 내 스스로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용의 자세를 취하고서도 나는 줄곧 (아내 표현대로) 투덜대 왔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 붙어 있는 시간이야 매우 짧지만,

그 짧은 시간이나마 나름대로 매우 신경을 써서 집안을 살피는데,

나로선 마땅찮은 구석이 눈에 쏙쏙 들어 오는 것을 어찌하랴?

 

"당신은 신경쓰지 말고, 그냥 편히 누워 있고, 편히 쉬어!

당신이 신경 안 써도 별 문제 없으니까 그냥 둥글둥글하게 지내."

 

집 안팎에서 신경 날카로운 태도를 보인다고 짐짓 나를 걱정해 주는 아내는 이렇게 당부하건만,

꼼꼼돌이(역시 아내가 붙인 말)인 내 성격상 어쩔 수 없나 보다.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요,

나름대로 신경써서 정리해 둔 게 망쳐진 게 눈에 들어오니, 어찌 가만 있으랴.

 

투덜이라고 비아냥을 받아면서도, "그냥 넘어가질 못해!"라는 응수를 받으면서도,

여러 해 동안을 이렇게, 스스로 피곤해질 만큼 투덜대 왔다.

아마도 이건 지난 여러 해 동안 내 생활이 고단했고, 내 경제가 고단했고, 내 정신세계가 혼미했기 때문인 성 싶다.

 

허나 최근에 자꾸만 돌이키고 돌이켜지는 것은,

인생 중반의 내 삶이 고단한 이유가 외부 아닌 내 안에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다.

 

여느 사람이건 대개 자신이 겪는 대근함을 가장 대근한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내 삶의 고단함 역시 웬만한 40대 인생에서 어지간히 만만찮을 것이기에,

"대체 왜 나의 삶은 이렇게 고단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번민해 왔다.

 

오랜 번민의 과정에서 나는 이 사태를 스스로 정리하고자 결심하였다.

그것은,

일상적인 나의 미움, 나의 욕망 따위로부터 스스로 탈해버리면 그리고 새롭게 변화해 본다면,

나를 꾸준히 둘러싸고 억눌러 온 외적 조건들도 또 다른 모양으로 달라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투덜이임을 자인하려 한다.

동시에 투덜대는 방식을 그동안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블로그 글쓰기로 바꿔 가기로 한 것이다.

 

직접적인 말의 투덜댐, 행동의 투덜댐이 아니라

글쓰는 공간을 통해 나의 화를 발산하고자 함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투덜댐을 여과없이, 참는 것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없이 내뱉어 버림으로써

나의 행동은 , 또 나의 입은 "투덜댐"으로부터 해방을 얻자는 것이다.

 

내 오늘 투덜선사를 자임하는 것은

생활 속 투덜이에서 블로그 속 투덜이로 변신하고자 함이며,

적어도 생활 속의 나 자신이 투덜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변신의 나래를 펼치고자 함이다.

 

"당신 왜 이렇게 점잖아 졌어?"

"김서방이 요샌 참 부드러워졌네!"

하는 새로운 평판을 얻은 나 자신을 기대하며,

오늘 투덜선사로 자임한다

 

기대하시라!

나의 화가 얼마나 하늘 높이 치솟는지를...

두고 보시라!

내가 얼마나 세심한 남자인지를...

귀 담아 두시라!

나의 엄중한 경고와 지도를!!!!!!!!!!!!!!!!!!!!!!!!!!

 

 

 

'행인서재 > 落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성장기 1  (0) 2007.12.18
조선일보를 지워주마  (0) 2007.11.15
선거 패배자의 상처뿐인 피로  (0) 2006.06.04
작살이다 지방자치  (0) 2006.06.01
'페어플레이합시다'  (0) 200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