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오늘 밤 눈! -남월 김수돈

행인(杏仁) 2005. 5. 21. 12:29


눈이 내릴 거란 기상예보 거세게 불어 와
퇴근 버스 휘청거린다
"눈발 날린다"
까까머리 학생의 나지막한 외마디에

벌써 길이 젖는다, 내린 눈이 녹아 흐르듯 길 가운데로 거어먼 자욱이 빙판같다
지난 겨울 눈길사고 자꾸 떠올라 조바심난다.

서울 사는 막동이 전화했더니
거긴 눈 소식이 기다려진다고,
하얀 겨울이 보고 싶다고
가로수 잎도 다 지고 썰렁해서
눈이나마 자연을 느끼고 싶다고, 혼자 쓸쓸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 와 다락 속 깊이 숨은 성탄목을 꺼내어
먼지를 턴다,
지난 봄 흙먼지와
여름 장마에 스며든 곰팡이와
겨울의 문턱에 걸쳐진 낡은 비옷까지

다들 꺼내어서 박박 문질러 댄다. 마른 헝겊 위로 기억들이 하나둘씩 또렷해지며 스쳐간다.

 

-남월 김수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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