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서재/落書

2015.1.25 풍경

행인(杏仁) 2015. 10. 11. 20:39

- 하루는, 연탄 나누는 봉사를 하자고 동무들이 성화를 하길래 가담했지. 다들 연탄 살 돈을 내는데 난 돈이 없어서 대신 몸으로 때우는 걸로 하고, 하루 품삯 20만원짜리 일일노동자인 내겐 약간의 수고비를 주기로 했어. 하루 못 벌면 당장 쌀 팔 돈이 없으니 말이지. 
-1종보통면허는 나밖에 없으니, 내가 후배에게 아쉬운 소리 해서 빌린 화물차를 내가 운전하고 가는데 기름이 없어. 호주머닛돈 털어 겨우 왕복할 만큼만 기름을 넣었지. 딱 만 원어치. 연탄공장에 가니 우리가 직접 실어가기로 하고 연탄을 싸게 팔기로 했다는구나. 에헤라디여! 까짓 연탄 천 장이야 뭐 금방 실으려니 하고 서빠지게 실었어. 아우 허리야!
- 연탄 나눠 줄 집에 도착하니 집은 시골집이래도 마당 넓고 텃밭도 있어. 연탄 쟁여 둘 뒤안에 가보니 기름보일러가 떡 허니 돌아가네. 연탄과 기름을 번갈아가며 땐다나! 에헤라디여! 
- 연탄 나를 동무들이 도착했는데 이게 웬 일? 같이 할 다섯명 중에 셋만 온 게야. 기업체 임원인 한놈은 급한 회의가 있고, 식당을 하는 한놈은 또 단체손님 일정이 잡혔다는 걸 어떡해? 나까지 넷이서 꾸역꾸역 날랐지. 헌데 시작하고 보니 이놈들이 자꾸 연탄을 깨먹어. 한때 연탄배달을 업으로 했던 내가 일일이 가르쳐주며 겨우겨우 일을 마쳤어. 오매! 힘든 거. 그 와중에도 연탄 쌓는 건 오롯이 내 몫이더라고.
- 일을 마칠 때쯤 나머지 동무 두 놈이 헐레벌떡 도착했어. 짐짓 미안해 하며 아주 어렵게 빠져나왔다고 너스레를 떨길래 어깨를 토닥여줬지. 시커먼 연탄가루 묻은 손이라고 화들짝 놀라더구만. 마지막 연탄 쌓고 있으려니 동무들이 빨리 마당으로 나오래. 기념사진 찍자더군. 내게 내미는 카메라를 받아들고는, 나란히 서서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녀석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줬네. 다음 나도 같이 찍어야 한다고 한놈이 교대하자는 걸 그냥 됐다고 했네. 빈정 상해서 말이지.
- 봉사를 마친 뒤 동무들은 목욕탕엘 가고 난 화물차를 돌려주러 가야 하니 헤어졌어. 화물차 주인을 만났더니만 아차! 차에 연탄가루 묻힌 걸 씻어내야 한다는 거야.에헤라디여! 뭐 어떡해? 뾰루퉁한 얼굴을 힐끔힐끔 눈치보면서 같이 세차를 했지.
- 참! 헤어지기 전에 회장 녀석이 흰 봉투를 내밀더군. 오늘 일당도 못벌고 애썼다고 말이지. 적어서 미안하다고. 동무들은 이번에 무려 10만원씩 걷었다면서. 미안하고 쑥스럽더군. 어쨌거나 다른 동무들은 돈도 내고 봉사도 했는데 난 수고비를 조금이나마 받아가는 거잖아! 헌데 집 앞 수퍼에서 먹을 걸 사려고 돈을 꺼냈는데 이런! 딱 5만원이 들어있는 거야. 화물차는 공짜로 빌렸고 연탄값을 45만원에 하기로 했다 했으니 이 녀석들 10만원씩 걷어 연탄값 보내고 나머지 5만원을 내게 건넨 거지. 그래 고맙다. 동무들아! 가난한 하루벌이 노동자라고 수고비도 주고. 참 고맙구나. 고마워서 이 돈으로 술이나 먹을란다. 에헤라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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