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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판매해선 안 될 당신의 노동력

행인(杏仁) 2015. 3. 23. 22:12

 신자유주의 이후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물론 나라 안에서도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해야 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경쟁의 강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할인판매(discount)’가 보편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많은 유통 업체들은 정기적인 세일 행사를 하고, 인터넷 기업 중에는 아예 상시 할인 체제를 갖춘 경우도 적지 않다. ‘가격인하=판매량 증가’라는 공식을 믿는 마케터들도 급증했다. 

 하지만  웹닷컴 최고경영자 Jeffrey M. Stibel은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에 기고한 논문에서,"할인 판매를 잘못하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는 객관적인 제품의 가치가 아니라 자신들이 느끼는 가치에 근거해 구매 결정을 내린다.”며 “가격 할인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기업이 공들여 생산한 제품을 할인판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금의 순환' 때문이다.영업 실적 악화와 재고 증가로 ‘눈물을 머금고’ 할인 판매에 나서는 기업들도 상당수다. ‘폭탄 세일’이나 ‘공장 폐업’ 등 현란한 문구도 자주 등장한다.


 국제 무역거래에서의  덤핑(dumping)은 국내시장의 디스카운트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국제 무역거래에서 덤핑이란,  특정 수출국에 국내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하여 가격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수출 시장에서 경쟁기업을 무너뜨려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약탈적 덤핑이 있고, 수출 초기에 시장개척차원을 위해 가격을 어느 정도 낮추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순환적으로 원가이하에 재고상품을 처분함으로써 전체적인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우와 국영무역 국가에서 외화획득을 목적으로 덤핑을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런 디스카운트나 덤핑은, 시장에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상품>을 할인판매하듯, <노동력>도 할인판매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력도 상품처럼 거래되는 측면이 있다. 모든 재화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듯이,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을 일컬어 노동시장이라 한다. 

 하지만 상품 거래는 판매자가 그 상품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화폐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반면, 노동력의 거래는 판매자가 생산현장에 투입되어 노동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판매자인 노동자와 판매의 대상인 노동력이 분리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결국 상품과 노동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상품은 화폐로 통용되는 또다른 재화로 대체되어, 재화에서 재화로 순환하지만, 노동력은 순환하지 못한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화폐는 다시 소비를 통해 순환할 지언정, 정작 노동력 그 자체는 순환하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바로, 노동자와 노동력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상품을 할인판매함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이윤을 줄이거나 포기하는 대신에 자본의 순환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노동자가 노동력을 할인판매할 때에는 무엇인가 순환시킬 새로운 기회란 없다. 단지 근근이 생명을 연장할 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의식주 내지는 의료비, 문화소비를 줄여가며 비루한 삶을 연장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다시 또 기회가 오겠지!" 하는 말이란, 사실 노동자에게 무언가 순환시킬 새로운 기회는 아니지 않은가?  
 노동자여! 자신의 품삯을 할인판매하지 말라. 당신들이 노동력을 할인판매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기업들은 노동자의 품삯을 어떻게든 깍아내리려 기를 쓰지 않는가? 노동력의 할인판매는 노동자 자신의 삶뿐 아니라 노동자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할인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그 자녀들의 미래도 할인되는 처절한 아픔이 될 것이다.

 노동자여! 결코 자신의 품삯을 할인판매하지 말라.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노동자는 점점 깎아내려져 당신 일족의 삶도 깎아내려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