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되던 해 이맘 때 쯤이었을 게다. 봄볕은 천지간에 가득한데 햇살을 시샘하듯 바람이 모질게 불어 온갖 것들을 흔들어대는 날이었다. 텅빈 학교 운동장에서 땅바닥에 기역 니은을 쓰고 있는데, 어어노 어어노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눈을 들어 보니, 강 건너 산중턱에서 꽃상여가 바람에 흔들리며 떠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이어서였을까? 비탈진 오솔길을 따라가던 상여는 몇 발짝 가다 서고 몇 발짝 가다 서고 하면서 힘겹게 힘겹게 움직였다. 바람이 거세어서 상여가 잘 못가는구나! 실제로는 좁은 산길에서 상여꾼들이 발걸음을 맞추느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린 눈에 선하게 박여서인지, 그 후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 풍경이 떠오르고, 으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람이 모진 날에는 세상을 떠나가는 일도 힘이 드는구나!" 반백년이 지났으되 나는 아직 여전히 그 풍경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바람 많은 오늘 또다시 그 풍경의 환상에 시달렸다. 나는 아직도 다섯살인가?
어떤 생각에 골똘하여 밤을 지새운 지난 새벽, 전주에는 찬 비가 흩어져내렸다. 아침이 되자 짧은 눈보라가 몰아치더니 오후가 되며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퍽 짓궂기도 하다. 이렇듯 사람 가슴을 적셨다가 쥐어짜다가 결국 탈탈 털어가다니!
해야 할 일들은 묵직한 체증이 되어 어깨며 등짝에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얄밉게도 바람이란 놈은 떠나지도 않고 덥혀지지도 않은 채 주위를 빙빙 돌며 뼈마디까지 시리게 한다. 나는 아무런 짓도 하지 못한 채 궂은 날씨만 탓하며 "바람이 모진 날에는 세상을 떠나가는 일도 힘이 드는구나!"하고 되뇌인다.
사람 목숨이야 언제 끊길지 모를 일. 어느 때에 세상을 떠나더라도 정리할 유품 같은 게 없는 빈 몸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아! 그러나 훌쩍 떠나기에는 아직 세상에 널어놓은 미련이 많다. 갚아야 할 빚도 많고, 채워지지 않은 욕심도 참 많이 남았다. 그럼에도 자꾸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다섯살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를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해서이다. 나의 진실은,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벌거숭이 내 몸을 숨기고 싶은 욕구이겠다. 모진 바람을 핑계 삼아 눈 딱 감은 채, 웅크려 숨고 싶은 날이다.
(2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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