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전주로 갓 전학 온 까까머리 소년은, 교동의 오목대 아래 기와집이 많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향교가 가까웠고, 동네엔 온통 옛날식 기와집들이었지요.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한 지라 소년의 식구는 여러 가구가 세들어 사는 커다란 기와집 한 귀퉁이 이간장방에 세를 들었답니다. 오목대 아랫쪽 기역자 골목 끝 집, 안채에다 문간채와 행랑채, 사랑채까지 있고, 마당도 널찍한 한옥이었지만, 여덟 가구가 세들어 사는 바람에 변소 한 번 가려면 줄서서 순서를 받아야 하는 북적북적한 집이었지요.
소년네가 사는 방은 안채의 뒤안에 붙어 맨 안쪽 귀퉁이었고, 여덟가구가 사는 집안의 그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곤 했답니다. 그 마당을 건너다 보면 옆집 담장 너머로 철쭉이며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난 꽃밭이 보였고, 그 안쪽엔 웅장한 나무기둥으로 단장한 넉넉해 보이는 기와집이 눈에 들어오곤 했지요. 소년은 늘 그 집을 부러워 했지요. ' 나도 꽃밭을 가꿀거야.' 소년은 남몰래 혼자 중얼거리곤 했어요..
소년의 식구는 모두 넷, 아버지는 시골 학교에 계셔서 한 달에 한 번 오시고, 형과 누나들은 직장과 군대,학교 때문에 다들 흩어져 있어서 어머니와 아들 셋만이 이 셋방에 살았답니다.
소년은 시골에서 자랐기에 전주가 얼마나 넓은지도 몰랐고, 시내 중앙동이나 오거리쪽에 가면 커다란 극장도 있고, 으리으리한 상점들이 있는 줄도 몰랐지요. 소년이 전학을 한 중학교 또한 장승백이를 넘어서 산 밑에 있는 학교였어요. 시내 구경은 도통 할 기회도 없었지요. 기와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동네를 빠져나가면 곧 신작로 길이 나오고, 그 신작로길 어귀 동양당 한약방 앞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지요. 일요일이면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는 길이 남부시장통이어서, 그나마 시장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답니다.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휴일이었으니 사월 오일 식목일, 아니면 오월 오일 어린이날,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었을 겁니다. 한 동네에 살던 친구 서넛이 집에 찾아 온거예요. 이건 소년에게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부잣집 아이들이었고 공부도 잘해서 반장 아니면 부반장을 하거나 우등상을 타는 아이들이었거든요. 소년도 시골에서야 전교 1등을 했지만, 전학을 온 뒤론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 아이였거든요, 게다가 소년이 한 두 차례씩 놀러가 본 친구들의 집은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고, 소년네 집처럼 여러 가구가 모여 살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소년은 그 친구들을 부러워했거든요, 소년은 나도 이렇게 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혼자서 연습장에 집 설계도를 그리는 버릇이 생겼지요.
소년은 그때까지 단 한번도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 온 적이 없었거든요. 셋방에 살고 있는게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헌데 이 친구들이 갑자기 집에 찾아 온 거예요. 그것도 각자 하나씩 자전거를 끌고 말이지요. 한 동네에 살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각시바위에 놀러 가자고 온 거예요. 각시바위란 곳은 소년이 살던 그 동네에서 한벽루를 지나 한 전주천을 따라 2킬로쯤 올라가면 있었어요. 그곳에서 여름이면 아이들이 모여 물장구도 치고 다이빙도 하는 명당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다 꼭 한 두명씩 물에 빠져 죽기도 했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마침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가려고 나서려던 길이었어요. 친구들이 찾아 오자 어머니는 아들더러 함께 가라고 했지요. 어머니는 전학온지 얼마 안된 소년이 방안퉁수 노릇할까봐 걱정되었나 봐요. 친구들이 모처럼 놀러 오니, 반가웠던 것이지요. 그래 아들더러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소년은 결국 가지 않았어요. 소년은 친구들처럼 자전거가 없었거든요. 소년은 '난 엄마 모시고 교회 가야 해'라며 친구들을 그냥 돌려 보냈지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섰지요.
그런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는 길에 소년은, 왠지 살짝 눈물이 났어요. 사실 함께 놀고 싶은 친구들인데, 자신은 자전거도 없고 해서 서러웠던 것이지요. 게다가 부잣집에 사는 친구들이 자신이 사는 초라한 셋방을 들여다 보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고요. 소년은 행여 어머니가 알아챌까봐 햇빛에 눈이 부신 것처럼 손으로 눈을 가리고 몰래 눈물을 훔쳐냈답니다.
어머니는 소년을 데리고 교회를 향해 걸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 봅니다. "자전거 하나 사줄까?"히고 물으시는 거예요. "아니, 더 크면 사 주세요! 난 다리가 아직 안 닿는 걸요." 그럴듯하게 둘러댈 수 있었던 건 자전거를 타기엔 아직 소년의 키가 작았던 덕분이지요. 하지만 소년이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건 아니었어요. 아무리 작아도 중학교 2학년이나 됐는데 자전거를 못탓기야 했겠어요? 자전거 타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남의 것을 얻어 타며 다 익혀 두기야 했지요. 다리야 잘 닿지 않아도 페달이 높게 올라 올 때 구르기만 하면 되니, 평지에서 자전거 타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어요.
그래도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우린 집도 없는데 내 자전거 살 돈은 아마 없을거야.' 소년은 혼자 생각하면서 어머니 뒤를 따라 교회에 갔지요. 교회에 간 소년은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우리집도 생기게 해 주세요. 저도 자전거 탈 수 있게 해 주세요.' 소년은 말소리를 안 내고 속으로만 기도를 했지요. 행여 어머니가 들으시고 속상해 하실까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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