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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論은 生物이다

행인(杏仁) 2010. 6. 10. 19:16

與論은 生物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으레 걸려오는 전화설문 혹은 ARS 설문 등을 한 번쯤은 받아 봤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에 대한 각 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펴는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중요하다. 그 결과에 따라 각 당의 후보들은 공천과 낙천으로 엇갈렸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도 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여론은 일반 대중의 의견이며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여론조사 결과는 정말 신뢰할 정도로 과학적이고 객관적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에 의해 희비가 나뉘는 게 현실이고 보니,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들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잘 받아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조사에 응대하도록 하기도 한다. 결국 조직력에서 승부가 갈린 여론조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조직력에 의한 여론조작이랄 수 있다. 
 현재 여론조사 방식 중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전화설문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다. 헌데 이 방식의 여론조사는 실제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특정계층의 응답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자 비율의 30% 이상이 가정주부라고 한다. 가정주부라는 특정계층의 응답률이 30% 이상을 웃돌고 있는 것은 ‘응답자 구성비율의 할당성’면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이 문제점은 여론조사의 결과마저 어느 정도 왜곡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상존한다고 하겠다.
 둘째 지적되는 점은 표본추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내 전화번호 등재율이 낮은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화번호 등재율은 고작 60% 미만이라고 한다. 이것만 감안해도 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는 이미 표본의 40% 정도가 누락되는 셈이다. 국민 100명 중 40명이 누락된 60명을 기준으로 하는 여론조사인 셈이다. 무려 40%를 빠트린 표본추출의 한계를 안은 채 진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는 조사방식 자체가 신인에게는 매우 불리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전화여론조사방식은 특정 인물의 인지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른바 ‘인지도에 따른 후방효과’라는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 과정에서 특정인물의 인지도와 후보로서 적정성이 뒤섞여 인지도 높은 특정 인물을 후보로서 적정하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후보는 적정성이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당선 가능성도 높게 나타난다. 인물의 인지도에 따라 여론조사의 결과가 고착화하는 한계를 안고 있으니, 결국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정치 신인 후보자들에게는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행 전화여론조사의 한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한계점은 자치단체장 관련 여론조사에서 더 크다. 자치단체장 관련 여론조사의 경우는 특히 특정 후보에 대한 인지도와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적정성이 혼합되어, 인지도 높은 특정 후보가 자치단체장으로서 적정하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4년 동안 지역 자치를 이끌어 오는 사이에 폭넓은 행정 홍보를 통해 막대하게 인지도를 높여 놓았으니 그 영향력이 어디로 갈 것인가? 
  여론조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 과정에서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여러 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론매체의 입장에서 짚어 생각할 것은,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 보도를 정당화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결과에서 보듯, 여론조사로 읽어 본 민심과 실제 투표장에서 드러난 민심은 꽤나 차이를 보였다. 한 두 번의 여론조사로 민심을 제대로 읽을 만큼 국민의 마음이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증거이다. 국민의 여론은 ‘쉴 새 없이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이라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과정에서 수많은 여론조사가 진행되었고, 언론매체들은 이를 중요한 정보로 삼아 선거보도에 활용했다. 하지만 여론은 살아 움직인다. 조사결과 드러난 것 말고 민심을 살펴 주는 언론이길 바란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것도 언론의 한 역할일 테지만,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민심을 살펴 주는 것은 더욱 중요한 언론의 책무 중 하나 아닌가? 더군다나 여론조사 결과에만 매달려 ‘이것이 여론이다’ 하고 보도하고 끝난다면 언론의 역할을 하다 마는 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