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흐린 날의 사랑 -남월 김수돈

행인(杏仁) 2005. 5. 21. 13:45
  두 눈 마주치면
  힘겹게 달싹일 입술과
  두 손 맞잡으면
  어깨를 부비고픈 그리움은
  비를 맞으면서
  자꾸만 타들어 가고

  그리워도 할 수 없네요

  이렇게 흐린 날,
  젖은 거리에 맨발로
  찾아 나설 순 없지요
  비 내리는 아침 그리움이
  촉촉한 나뭇잎처럼
  서럽게 배어 나더라도

  다가설 수 없는걸요

  준비 없이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게 될까봐
  오히려 두렵지요.
  모퉁이 너머 음성이 들리면
  차라리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뒤돌아 가고

  때를 기다려 다시 만나야겠지요.     -남월 김수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