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젊은 날의 삽화 5- "그림자"

행인(杏仁) 2005. 5. 21. 11:55


석양 무렵 산모퉁이에선,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내 그림자 찾을 길 없습니다.
크게 드리운 산 그림자에 스스로 묻혔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커다란 산인가 봅니다.

저기 먼 들녘,
마을 앞 정자나무 그림잔 길게 누웠습니다.
백년을 넘게 자랐을 저 나문
산기슭을 훨씬 벗어났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산모퉁이 아래 조그만 내 몸둥이
어두워 잘 눈에 띄지도 않을 겁니다.
저물어 가는 어스름 빛
그나마 당신 그림자가 덮었으니 말입니다.

황혼의 산기슭에선 아무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산이 눕고 거기 드리워져 날 쉽게 가둬 버린 지금
내일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밤이 어서 왔다 가길 기다리듯 나뭇잎만 쉼 없이 흔들립니다. (1997.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