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인
젊은 날의 삽화 3-"실랑이"
행인(杏仁)
2005. 5. 21. 11:53
손 전화에서 신호음이 납니다.
여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잘 갔어?
첫눈이 내린 아침 내 출근길이 걱정돼서 안부를 물어 봅니다.
삐삐 쳤는데 왜 전화 안 했어?
두 번이나 쳤는데...
호주머니에서 개 목걸이를 꺼내 번호를 읽어봅니다.
어제 찍힌 번호 이후는 비어 있습니다.
이상하다...
삐삐 안 찍혔는데?
왜 안 찍혀! 자긴 만날 내 삐삔 못 받았대.
올해 들어서 내가 친 삐삐 제대로 받은 거 있어?
하여튼 자기 요즘 수상해.
와 돌아버리겠네.
삐삐는 가만히 있는데, 이 개 목걸이 때문에
전화통은 실랑이로 가득합니다.
정말 안 찍혔단 말야.
이동통신이 뭐 잘못된 거 아냐?
딴 소리 하지말고 끊어. 것 가지고 괜히 실랑이하기 싫으니까.
바쁘게 돌아가는 오전 열시 반, 생각 못한 일이 생겨
괜스레 짜증만 불어납니다. (1996.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