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5 숲
무성한 숲은, 크고 작은 초목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흙 위로 겨우 목을 내놓은 키 작은 풀과 더러 솟은 들꽃에 꽃나무며, 과실나무, 말라붙은 고목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침엽수 하며 가녀린 연두에서 짙은 초록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어깨를 서로 부비며 자란다.
아마 지난 계절을 부대끼는 동안에, 이들은 서로를 감싸안기도 하고 서로를 침탈하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양분을 주고 받다가 이쯤 이르지 않았을까 싶다. 숲이 무성해지는 동안에 이 나무와 풀들에게도 숱한 사연들이 있을 테지만, 결코 나무는 풀을 원망하지 않으며 풀도 나무를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네 사람들도 살아가는 동안 숲을 이루며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보니, 나는 과연 이 숲의 어디쯤에서 어느 키작은 나무의 뿌리를 핥아먹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어느 무명초에게는 야트막한 자리 하나를 내주었을 것이며 다른 어느 무명목이 내어주는 뿌리에 나도 뿌리를 박고 비바람을 견뎌왔을 터.
사람 마음이란 게, 누구에게는 내어주기도 하고 누구에게서는 받아먹기도 하며, 내어준 만큼 받기도 하고 받은 만큼 내어주기도 한다. 더러는 어느 비좁은 마음자리 하나를 두고 서로가 치열한 다툼을 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영 맞지 않아 함께 자라지 못하는 마음자리끼리라면, 숲을 이루는 과정에서 불행한 사태를 빚기도 하겠다. 밀려난 한쪽은 그만 고사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 슬픔에 무심한듯 마냥 무성하게 자리잡기도 하는 일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마음이 더러 다투고 더러 어깨를 나누며 어우러지는 동안에 사람의 숲도 초록으로 무성해지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이 좁은 땅 위에서 제자리를 잡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을 것인저, 숲이 이렇게 푸르고 무성한데 자신에게 어깨 한쪽 발등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고 이웃을 원망하지는 말 일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 사람의 숲에는 원망이 많다. 많다 못해 차고 넘치는 원망은, 제각각 부여잡은 사람들의 자리를 흔들고 급기야는 폭풍우가 되어 사람의 숲을 파헤쳐놓고 만다.
사람이 제 원대로 남의 마음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폭력이다. 더군다나 누가 갖지도 않은 남의 마음을 대신해서 가져다 달라거나 내놓으라고 한다면, 이것은 닿지도 않는 원성이겠다.
초록 짙은 이 오월의 숲을 보며 어리석은 나를 돌아본다.
나무는 풀을 원망하지 않으며 풀도 나무를 원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