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레박은 채워지지 않았다 2014.6.30
종일 우물가에 구부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말라붙은 밧줄에 달려
허청이는 낡은 두레박에 물을 길었다
물은 단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물을 긷지 않았다
두레박엔 오래된 금이 가 있었고
길어 올리는 순간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갈 무렵
끼니 때를 넘긴 굶주린 승냥이 한마리가
도시 밖으로 힘없이 기어 나왔다
햇빛이 따가워서일까 얼굴이 몹시 가려웠다
손톱을 세워 제 몸을 긁어대며 숨을 들이마시던
뒤통수가 쭈뼛거려
하마터면 급제동을 걸어제낄 뻔 했다
"천천히 달리자꾸나 검정색 3769
저녁이지 않니
너는 지나치게 바짝 붙여 따라온다
그렇게 흔들리며 몰아 붙이면
숨이나 쉴 수 있을까
앞서 가는 내 엉덩이가 그만 움찔거린다
봐라 20미터 앞 신호등에도 붉은 노을이 물들었다"
천변 다리 끝에서 허리를 펴는
호리호리한 여자의 똥배에서
문득 네 나이를 보았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청춘이 아닐진대
들판 어귀에서 자귀 꽃이 바람에 너울거린다
금방이라도 터져 흩날릴 듯
자홍 머리에 성장을 차린 나무등걸이 굵다
해는 어째서 날마다 서쪽으로 산을 넘는 것일까
지는 날이 원망스러워 나는 북쪽으로 눈을 돌린다
노을 깊을수록 반짝이는
빛을 따라서 하루살이 모여들고
푸른 논바닥에 학들이 내려와
먹이를 찾는 이 저녁에도
나의 두레박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 2014. 6.30 金杏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