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서재/落書

친구의 사진 2014.3.29

행인(杏仁) 2014. 12. 25. 22:10

정호영 친구는 자꾸 카메라를 들이댄다. 덕분에 가끔 내 사진도 생긴다.

내 얼굴은 세번 상처를 입었다. 중 3 시절 여드름 딱 한 개 난 것을 손가락으로 냅다 파댔더니만 그예 쬐그만한 흉터로 자리잡았다. 1992년 가을 새벽 프라이드를 몰고 전군도로를 달리다 가로수를 정면 충돌한 끝에 콧대가 약간 틀어졌으며 턱 아래에 역시 가느다란 흉이 졌다. 그리고 작년 가을 금빛 해 빛나는 오후 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에서 그만 굴러 떨어져 얼굴과 아스팔트가 정면충돌했고 결국 왼쪽 눈 옆에 희미한 흉이 남았다. 
상처를 입어 흉진 게 전부 합쳐봐야 네 곳인데, 친구가 사진을 찍은 그날 내 얼굴은 수십개 크고 작은 점과 세월이 남긴 주름과 약간의 다크서클이 덮였다. 
이상은 페이스북 서버에 남게 될 행인의 얼굴에 대한 정보가 될 것이다. 언젠가 내가 도망자 되어 폐허를 헤맬 날이 온다면 추적자들의 손바닥에 이 얼굴이 뜨지 않겠나 싶다.

친구여! 내가 죽는다면 장례식일랑 치르지 말고 그저 이 사진 중 한 장을 골라 영정으로 세워다오. 장례식을 치러보아야 내 마음을 빌려 쓴 사람이야 그예 참석하지 않을 것이니...

 지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