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간 불공정거래에 대한 법의 책무
대규모 유통업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유통업체에겐 달가울리 없겠지만, 공정거래위원회 규제에 맡겨 온 불공정거래행위를 개별법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갑을간 불공정거래에 대해서, 법은 부단히 개입해야 하겠다. 이런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는 법이라면, 그 법부터 버꿔야 할 일이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하 대규모유통업법)이 9월 7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의 골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납품·입점 업체에 대한 횡포를 막겠다는 것이다.
법안은 물품 대금 감액과 판매촉진비용 부당 전가, 부당한 반품, 인력파견 요청, 배타적 거래강요 등을 대표적인 불공정 거래 행위로 보고 이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공정위가 직권으로 사건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불공정거래행위가 발생할 경우에 납품 대금이나 연간 임대료에 해당하는 범위 내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배타적거래 강요, 경영정보 제공 요구, 보복조치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할 수 있게 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그동안 관행화돼 왔던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강력한 규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대형유통업체와 중소기업체간의 공정거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고, 과다 경쟁으로 인한 무리한 납품가 인하 문제도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불공정한 갑을(甲乙)간 상거래를 공정거래위원회에만 맡겨 두지 않고 개별법으로 직접 규제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대규모유통업자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그동안에는 공정위 내부 고시로만 규제해 왔다.
공정위는 지난 2008년부터 대규모소매점업고시를 통해서, 대형유통점업체가 판촉비용을 납품업체나 입점업체에 떠넘기는 것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는 했다. 하지만 거대 ‘갑(甲)’과 영세 ‘을(乙)’ 사이에 관행으로 굳어져 온 불공정 거래관계를 수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소업체들로서는 웬만한 불공정 요구 정도야 눈 찔끔 감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공정위에 하소연한다는 일도 거래를 포기하기 전에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기껏 주장해봐야 뚜렷한 이익도 없고, 오히려 납품 길만 끊기기 십상인 탓이다.
거래가 끊기면 생존까지 위협받는 영세업체는 더욱 그렇다. 명성 있는 대형유통업체에 납품한다는 것이 어쩌면 생명줄일 수도 있는 영세 ‘을(乙)’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얼마나 있을꼬.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거대 ‘갑(甲)’의 요구에 순응, 아니 복종해 온 것이다.
이렇듯 불공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에 대형유통업체는 절대 손해는 없고 오로지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갑(甲)의 위치에서 군림해 왔다. 여기에 입점하거나 납품하는 수많은 중소업체들은 모두 약자인 을(乙)의 입장에서 ‘갑’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 급급하며 끌려오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유통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자기들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미는 것을 반길 리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유통업계는 최근 유통 수수료 인하 압박에 대해 나름의 고충을 토로해 왔다. 여기에다 대규모유통업법마저 시행된다면, 유통업계의 고통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 신규 중소업체와의 거래에 있어서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법이 제정되면 불공정거래 행위 사실 증명과 잇따른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조직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다.”
“신규 중소업체와의 거래에 있어서 부담감이 가중되는 만큼 오랜 기간 거래해온 업체와의 거래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신규 거래 활성화를 꾀하기 어려워져 결국 중소 신규 업체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해 “어느 정도 시정할 점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법 제정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들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소송 대응도 굳이 필요 없다. 또한 신규 업체와 거래를 꺼릴 이유조차 발생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유통업계의 우려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불공정을 개선하지 않으려는 데에서 오는 자가당착적 우려에 다름 아니다. 대규모유통업법 때문에 법률 대응 부담이 는다거나 신규업체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는, 이들 업체로서는 불공정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 아닌가.
대형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은 ‘물건을 팔면 팔수록 손해 본다’고 호소하고 있다. 수수료가 너무 비싸고 묶음판매, 끼워팔기 같은 불공정 요구 때문이다.
이러한 불공정행위를 유형별로 구체화하고 분쟁을 조정하며, 불공정행위에 대해서 과징금과 벌금형까지 가능하게 한 장치가 이번 대규모유통업법이다. 중소업체에 대한 보호장치가 그만큼 강력해지는 것이다. 분명 대규모유통업법은, 거대 ‘갑(甲)’과 영세 ‘을(乙)’ 사이의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바로잡는 데에 상당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대규모유통업법 뿐 아니라, 다른 갑을간 거래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법의 개입은 필수다. 우리 사회는 법치사회이다.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갑을간의 불공정한 관계는, 법이 바로잡아야 한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기준을 세우고, 이런 관계가 빚어졌을 때 바로 잡아 주는 잣대, 이것은 곧 법에 맡겨진 책무다.
거래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공정한 거래는 반드시 법이 먼저 개입해 바로잡아야 한다. 갑을 간 거래관계의 불공정이란 게 ‘갑(甲)의 횡포로 인해 발생할 진대, 이것을 둘 사이의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실력 다툼에 맡겨 둘 수도 없지 않은가.
하기야 관계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갑을간의 불공정 관계를 공정하게 바로잡아주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도급관계, 고용관계, 임대차 관계, 계약 관계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다반사다. 법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법을 먼저 바꿔야 하겠다. 불공정한 갑을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는 법이라면 그 자체가 ‘갑(甲)의 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2011.9.15 전북의정연구소 소장 김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