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해 버린 균형발전
균형발전을 ‘국가적 의제’로 처음 제시한 것은 참여정부이다. 불균형 발전 전략의 폐해로 가속화해 온 지방의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지방의 공동화와 지역 간의 성장 격차는 우리 사회 최대의 갈등요인이다. 이것은 곧 지역감정과 지역 간 대립.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시켜 왔으며, 우리 사회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체시켜 왔다. 바로 이런 현실을 해소해 가는 것이 균형발전정책의 궁극적 목표였다.
참여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구성했고,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신 수도권 건설’이라는 기본방향을 확정했다. 관련법도 마련했다. 국가균형발전법과 지방분권법, 신행정수도건설법 등 이른바 3대 균형발전특별법이다.
물론 문제점이 없지는 않았다.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려는 것에 만만치 않게 저항이 생기다보니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무산되고, 그러자 그 변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추진한 것은 참여정부의 무리수였다.
공공기관 175개를 각 지방에 이전하기로 확정했지만, 전북 같은 낙후지역의 여건이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기업·혁신도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보상금도 매우 많았고 부동산 가격을 또다시 폭등시켰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이 정책은, 근본적으로 국가경영 차원에서 지역 간 발전 격차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고 한 균형발전 전략이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정리하는 작업부터 서둘렀다. 국민이 선택한 새 정부이니, 국가경영철학이 다른 기존 정부의 사업을 폐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가 원하는 사업을 정리하는 데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2008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가균형’을 들어낸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었고, 국가균형발전법도 ‘국가’를 뺀 지역균형발전법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국가균형’이 아니라 ‘지역균형’과 ‘지역발전’으로 변신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국가경영 차원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방에 분배해 주는 중앙정부의 시혜적 사업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이후 굵직한 국책 사업과 공공기관 이전문제는 지역발전위원회 본연의 역할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됐다. 세종시 수정안, 동남권신공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이명박 정부 들어 국책 사업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흔들리지 않은 사업이 없다.
이 때문에 불거진 지역 갈등의 소용돌이는 정부의 정치적 결정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국민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저항이기도 했다. 균형발전의 상징이어야 할 사업마다 지역 간 이해 다툼의 막장에 빠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지역 관련 정책이 균형발전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을 다만 ‘정치적 의제’로 추진했다.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적 공정성은 생략한 채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한 정치적 판단으로 밀어붙였다. 국가적 균형발전을 실현해 사회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문제의식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더 급급해 했고, 갈등 조정과 관리에도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의 가치와 시대적 의미를 외면한 채, 국가경쟁력 강화를 앞장세웠다. 지방의 자립화를 지향한 수도권 규제 정책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 명분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토균형발전정책을 꾸려나가겠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한다고 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성장지상주의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 성장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하는 데에 필요한 물적 토대이기는 하되, 성장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것이 실질적 민주주의가 구현된 공존의 사회이다. 이 상위의 가치를 몰이해한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보다 오로지 수도권의 양적 성장과 국가의 성장만을 겨냥해 왔다.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균형발전의 궁극적 목표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김수돈/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