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당장 만들라
둘째 아이가 서울의 사립대에 입학했다. 이른바 '인(in) 서울'에 성공했다. 명문대 우수신입생은 아닐지라도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3년 전 고등학교 진학할 땐 턱걸이로 연합고사에 합격해 내내 하위권 성적을 맴돌던 녀석이다. 그런데 자기네 반에서 '인 서울'한 학생이 겨우 네 명이라나. 3년 전 출발점을 생각하면 이 아인 눈부신 성과를 낸 거다. 초중고 12년 동안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은 남의 일처럼 외면하고 학교에 다닌 녀석이니, 더욱 기특하다. 영화 공부를 하겠다고 나름대로 결심하더니 그 뒤로 자기 공부에 열심을 내긴 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대견스러운 녀석의 학비를 내는 사이 금세 등골이 휜다. 지방에 사는 서민이 서울의 사립대에 아이를 진학시키는 일이란 과연 장난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에 기숙사비를 합하니 6백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작년에 국립대에 들어간 큰 아이에게 한 해 들어간 총 비용보다 많은 액수다.
집을 떠나 학교를 다니니 숙식비도 큰 부담이다. 한 학기 백만 원 가까운 기숙사비와는 별도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밥값에 책값에 어림잡아 계산해 봐도 1년에 들어가는 돈이 2000만 원은 넘을 듯하다. 하는 수 없이 얼마간은 학자금 대출을 받고 얼마간은 다달이 부쳐주기로 했다. 씩씩한 녀석이라 모자라면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올 봄 큰 아이가 군대 가겠다고 휴학한 것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온 집안이 휘청할 뻔 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이 둘을 대학에 보내는 가정의 풍경들이 고만 고만하다. 장학금이라도 받은 아이는 집안의 보배요, 지방 국립대로 진학해 준 아이들은 집안의 효자다. 자식들 학비 감당하느라 은행 대출을 받는 친구, 새 학기 때마다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는 건 그나마 이자라도 싸다며 고맙게 여기는 친구, 자식 학비 감당하기에 모자란다며 대리운전 부업 나선 친구까지, 높아진 대학등록금의 벽을 넘느라 온 가족이 허리를 졸라매는 가정들이 즐비하다. 동네 단골 술집 아르바이트 학생은 새벽 두시까지 두 군데씩 아르바이트를 다닌다. 그나마 버스 기사인 아버지가 파업 중이라 요사인 학교에서 점심도 거른단다. 등록금 고민을 하던 여대생이 자살을 했다던 작년 가을의 뉴스가 새삼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높은 대학 등록금은 대다수 국민에게 하나의 장벽이라는 걸 절절히 느낀다. 이태전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내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니 이제야 알겠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참 둔한 사람이다. 대학등록금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한때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지 않은가.
지난 대선 때,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을 교육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워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을 기억한다. 한나라당은 일찍이 2006년,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교육비부담 반으로줄이기팀'을 내세워 3조 원 규모의 국가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기여입학을 허용해 입학 기부금 일부를 적립하는 등 방안을 제시했다. 그 '교육비 부담 반으로 줄이기 팀'의 팀장이 지금의 교과부장관인 이주호 의원이었다. 이후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이란 표현을 쓰며 대선에서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땐 그렇게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써먹고는 이제 와서 거꾸로 오리발이다. 올해 초 민주당이 '반값 등록금 달성'을 당의 복지정책에 포함하자, 한나라당과 보수층에서는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과연 그들이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아마 민주당도 이 정책을 공약으로만 이용하고 만다면 당연히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와 여당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 비난하기 전에 그들이 내세웠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진짜로 실현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당이든 다른 진보정당이든 비슷한 류의 공약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진실로 비판할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1년 예산이 310조 원에 달하는 경제대국이다. 이런 만큼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실제로 '반값 등록금'을 능히 실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실질 등록금 총액은 11조~12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비가 무려 22조 원에 이르는데 그 일부만 떼어내도 대학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김수돈/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