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기록실/기록·杏仁Column

법 밖의 거래, 대리운전

행인(杏仁) 2010. 12. 21. 18:33

신문에 ‘대리운전’ 관련 기사가 빈번하다. 연말 모임이 잦다 보니 대리운전 수요가 늘어서일 게다. 대개가 대리운전을 부른 소비자의 불편을 호소한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거나, 기다리다 못해 음주운전을 했다거나, 동료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서 간다고 또는 변두리 행이라고 웃돈을 요구했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담겼다. 소비자 입장에서 나온 불만들이다. 허나 단지 소비자 입장에서 주변의 직간접적 경험 사례를 모아 기사화한 데에 그치고 있다. 어쩌면 기자 자신의 직접 경험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실망스럽다. 보도 기사로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대목이다. 어느 기자가 직접 불편을 겪었다면, 이것이 취재동기는 될지언정, 여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 손쉽게 기사로 출고해선 안 될 일이다.

우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보도가 아쉽다. 대리운전 시스템을 기자가 파악해지 못해서이니, 이건 취재 부실이다. 대리운전을 부르면 과연 누가 아쉬울까. 당연히 취객이 아쉽다. 취객과 대리기사의 일대일 관계에서 대리기사가 아쉬운 것은 없다. 그에게 필요한 돈 몇 푼을 빼면 그렇다. 취객이야 아무리 멀어도 차량을 끌고 안전하게 귀가해야 하지만, 대리기사로서는 굳이 그 취객을 위해서만 봉사할 의무는 없다. 그 취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취객을 선택해 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유흥가에서 취객 100명이 동시에 대리운전을 요청했다 하자. 대리운전업체는 인터넷을 통해 콜(call. 주문내역)을 띄우고 대리기사들은 각자 휴대인터넷 화면에서 콜을 선택한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 일대에 기사가 30명밖에 없다면, 나머지 취객 70명은 다른 기사가 거기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사와 업체의 관계는 계약에 의한 단건노동일 뿐이니, 업체가 임의로 기사를 보내주지 못한다. 기다려도 기사가 오지 않으니 취객은 당연히 속이 터진다.

헌데 대리기사 ‘명발’씨가 선택한 콜을 보니 취약지로 가는 취객이다. 목적지는 이십여분 거리의 변두리, 거기서 한 이십분 걸어 나오거나, 어렵게 택시를 잡아타더라도 3500원은 족히 든다. 이런 목적지로 선뜻 향할 기사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런 경우 기사는 선택한 콜을 취소하고 다른 콜을 고른다고 한다. 취소하면 기사는 벌금을 물고, 그 벌금은 업체의 수익이 된단다. ‘명발’씨 역시 다른 콜을 선택한다. 이번엔 목적지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인근의 다른 유흥가 주변이다. 어제 취객이던 당신이 오늘 대리기사가 되더라도 ‘명발’씨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 뻔하다. 바보가 아닌들. 아마 변두리 취약지 만큼은 요금이 특별이 비싸다면 대리기사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겠다.

또 하나, 대리운전에 관한 보도내용이 ‘대리운전이 법 밖에서 이뤄지는 행위’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짚지 않고 있다. 사실 ‘대리운전’이란 것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바가 없다. 취객이라면 불가피하게 누군가에게 대신 운전해 달라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나, 대리운전을 맡겼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대리운전이 매일 밤 성행하고 전국적으로 수십억이 오가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법률은 이런 행위를 보호해 줄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현행 법 아래에서 대리운전이란, 음주운전이라는 불법행위를 피해 가는 방법이기는 할지언정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합법적 행위도 아니요, 소비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도 결코 아니다. 대리운전자보험이란 게 있다지만 아직 소비자를 보호하기엔 한참 미흡한 상품이다. 대리운전에 종사하는 기사들도 아직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들의 노동력이 많은 이의 안전을 지키는 데에 보탬이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현 시점에서는 가급적 대리운전을 이용하지 말기 바란다. 아니 대리운전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래도 정 아쉬우면 대리운전을 불러야 하겠지만.

언론 지면의 대리운전 관련 기사 또한 불만을 모은 소비자 민원에 그쳐선 안 되겠다. 중요한 것은 기자의 시각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쓴 기사라면 소비자 민원이지, 보도기사라 하기에 미흡하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대리운전’이라는 업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 주기 바란다. 대리운전 업계와 종사자, 소비자는 물론이고 교통, 보험업계 등 광범위한 취재와 관련 법규, 제도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그 실태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아직은 미흡한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도록 여론을 환기시켜야 할 일이다.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 金壽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