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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뒷전인 사회

행인(杏仁) 2010. 10. 6. 12:59

독서는 뒷전인 사회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게 논술과외 광고다. 기가 막히게도 그중에는 유치원 아동을 대상으로 한 광고마저 등장한다. 해도 너무 한다. 어린아이의 삶일수록 놀이의 원리가 우세하게 작동한다. 놀이와 현실, 놀이와 공부가 어우러져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지적(知的) 요구를 강요한다면 오히려 어린이에게 흥미를 잃게 할 뿐더러, 창조적 잠재력마저 죽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그저 한탄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아동책의 판매동향을 보면 대학입시 논술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판매량을 결정하는 큰 요인이란다. 논술과 관련된 지식정보 기획물 쪽으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고, 신문광고에서는 창작물에도 흔히 대학논술에 이러저러하게 도움이 될 거라는 문구가 달린다.
 작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곤혹스럽다. 아이들의 특성과 현실, 다가올 미래를 고민해서 땀 흘려 쓴 작품은 잘 나가지 않는데 가볍게 쓴 작품들이 뜻밖에 잘 팔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주제가 뚜렷이 드러나 있어서 논술교육의 읽을거리로 적당하기 때문이라나.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나마 동화 쪽은 논술 읽기자료로 어느 정도 유용성이 인정되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유치원 아동들의 그림책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는 추세란다. 이런 추세라면 아동 독서문화가 내용적으로 황폐화되는 건 아닐까. 청소년 독서시장을 입시 참고서 시장이 먹어 들어가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유아용 도서시장마저도 차지하는가보다.
 아무리 대학입시에 논술이 도입되었다고 해도, 중고등학생용도 아닌 아동출판 시장에서까지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보다 더 깊고 넓은 원인이 있는 듯싶다. 아동출판 시장은, 중산층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사회 양극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중산층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불안감이 이들을 부동산과 사교육 등 방어적 투자로 내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책수단으로도 부동산 투기와 사교육 열기가 잘 꺾이지 않는 것이다. 아동출판 시장의 변화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대학논술은 여기에 기름을 부어 그 속도를 빠르게 한 것뿐이다.
근래 학교 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기득권층이 중산층의 추락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하여 편집증(偏執症) 상태로 몰고 가는 듯 느껴진다. 최근의 자율형 사립고 논란을 보더라도 그렇다. 현재의 특수목적고·자립형사립고 학생 수가 전체 고교생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과거 일류고가 전체 학생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앞질러 있다. 그런데도 특정 언론과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특목고·자사고의 확대를 부르짖는다.
 현재 정부가 평준화란 이름으로 가까스로 유지하는 것이 겨우 고교평준화이다. 그런데 지금 입시제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평준화가 무너지기를 바란다. 중고등학교가 서열화하고 대입에서 고교등급제를 실현하면 특목고·자사고에 다니는 자녀들의 내신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집단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시 입시지옥으로 몰아넣어도 좋단 말인가.
유치원 아동에게까지 영어과외가 번지고 논술과외가 번지는 세상이다. 중고등학교가 서열화하면 사교육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사교육비 투자 능력이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결국 '유전 일류대, 무전 삼류대' 현상은 더욱 고착화되고 말 것이다.
지금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은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부동산’과 ‘사교육’이 최고라고 말한다. 이렇게 속삭여 중산층의 불안감을 편집증으로 몰고 간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도산업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 저출산 고령화,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같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을 서둘러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미뤄두다간 사회경제적 양극화에서 비롯된 갈등이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하여 그 사회적 비용 때문에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커다란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다간 선진 사회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다 죽는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 金壽墩))